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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_2번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만드나.

나는 앞서서 내 인생은 행복하다고 거침없이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러한 와중에 최근 스멀스멀 불안한 감정이 명치끝을 조여오는 바람에 심장이 난데없이 두근두근 뛰어 크게 심호흡을 해야할 때도 있고, 이런저런 걱정들로 쉬 잠에 들지 못하고 밤을 하얗게 지새운 적도 있었다. 나는 젊은 시절 베갯니에 머리만 대면 코를 골던 사람이다.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만드나.

최근 나를 가장 괴롭히는 삶의 문제는 내 남편의 근무량이다. 우리는 현재 홍콩에 살고 있다. 우리는 반짝반짝 빛나던 20대에 호주로 영어공부를 하러 떠났다가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나에게도, 그에게 있어서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호주에서의 짧은 1년의 추억은 외국 생활에 대한 그리움과 영어에 대한 로망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우리는 첫 아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 아이가 모국어를 완전하게 배울 수 있는 무렵에 (우리에게 그 기준은 의사소통이 원활해지고, 읽고 쓰기가 익숙해지는 정도였다.) 그러니까 대략 2학년, 3학년 즈음에는 어떻게든 외국으로 가서 살자고 약속을 했다. 가능하면 아이가 어릴 때 부터 영어에 익숙해져서 큰 어려움 없이 제 2 외국어로서의 영어가 모국어 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우리가 계획한 대로 큰 아이가 2학년 1학기를 마치던 그 여름방학에 우리가족은 주재원의 신분으로 외국으로 나올 수 있겠되었다. 

 

원래 바라던 것 처럼 영어권 나라는 아니었지만 나라를 선택할 만큼 선택지가 충분하지는 않았기에 우리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된 것 만으로도 감사해 하며 첫 주재원 지 인도네시아를 거쳐 지금은 두번째 주재원 지인 홍콩에서 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집값을 자랑하는 홍콩에서 아마도 홍콩의 보통 서민으로서는 꿈도 꾸기 힘든,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가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쾌적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런데 그거 알아요? 이런 멋진 뷰 같은 것은 단 일주일이면 금새 익숙해진다는 사실. 그리고 그 일주일이 지나면 새까만 밤공기에 흩뿌려진 별처럼 반짝거리는 빌딩의 조명들도, 아침이면 흙빛의 구름 사이로 뿜어져나오는 붉은 태양의 숨막히는 여명조차도 공기만큼이나 흔하고 데면데면한 것이 되어버린다.  

 

자연이 주는 그 어마어마한 감동보다도 나를 잠 못이루게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내 살같은 신랑의 업무량이다. 주재원으로 발령이 되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우리의 한층 수준 높아진 생활수준 뿐만 아니라 신랑의 근무 강도였다. 주재원으로 파견된 직원이 많지 않다보니 소수의 직원이 현지의 직원을 관리 하는 것부터 모든 업무를 일당 백으로 하고 있는 듯 하다. 신랑은 보통 아침 6시 반에 나가서 밤 12시는 넘겨야 겨우 파김치가 되어 들어온다.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 없다. 그런 신랑을 보고 있는 것이 너무 안쓰럽고 나도 너무나 힘들다. 이런 생활이다보니 아이들은 주중에는 신랑 얼굴을 볼 수가 없고 주말이 되면 신랑은 소파에 앉아서도 꾸벅꾸벅 졸고 있기가 일쑤다.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만큼 가정에도 최선을 다하려는 신랑이라 어떻게든 아이들과 놀아주려고 노력하지만 일주일동안 쉬지못하고 누적된 피로를 주말에라도 풀지 않으면 않될 것같아 주말은 거의 집에서 쉬는 편이다. 안타깝고, 안쓰럽지만 내가 도와줄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는데다 회사에 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을 꺼내기도 쉽지 않다. 본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일찍 올 수 있는 보장이 없다. 시간이 갈수록 이런 삶이 과연 맞는 삶인지, 아이들이 우리 곁에 있는 시간이 얼마 없을 터인데 조금더 가족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내 생활에 대한 불만은 점점 더 쌓여만 간다.

 

신랑은 가장으로서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러자니 일이 많아서 야근이 어쩔 수 없는 모양이고, 나는 이런 생활 패턴에 화가 쌓여서 터지기 일보 직전인데 어찌해야할 지 답이 안나오는 찰나, 나는 결심했다. 아무래도 내가 신랑을 구출해주어야 겠다. 내가 움직여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신랑보다 더 많이 벌어서 그 망할놈의 회사는 그만두게 하고 내가 우리신랑을 고용해야겠다. 그래서 나는 MK대학의 문을 두드렸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이렇게 나의 '우리신랑 구출 대작전'이 시작되었다.